강문식의 디자인 작업은 결과물보다 제작 전후의 상호작용과 이를 설계하는 엔지니어적 감각에 중심을 둔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은 한편으로는 자유로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세심하게 계획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그간의 작업에 담긴 이야기와 강문식이라는 인물이 품고 있는 생각이 궁금하던 차에, 최근 열린 첫 개인전 ‘sunkiss’를 계기로 그를 찾았다. 이번 개인전 ‘sunkiss’는 흐름과 조건의 관계성을 탐구하며, 형식적 제약 없이 유연한 접근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온 강문식이 디자이너로서의 역할과 방향성을 다시금 환기하는 전시다.
오토바이가 분주히 오가는 을지로 인쇄골목 한켠에 자리한 강문식의 작업실에서 최근 전시와 작업의 방향성 그리고 디자인 철학에 관해 물었다. 처음 디자인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위계 없이 쉽게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대량생산의 미학에 매료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는 여전히 그때의 마음으로, 작업을 매개로 주변 또는 새로운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계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듯했다. 마치 이번 전시의 중요한 상징인 구름처럼 모였다가 흐르고 흩어지며. 한 시간 남짓 대화의 의미 있는 대목을 그대로 담았으니, 아래에서 직접 확인해 보자.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강문식이다.
청소년기에 영향을 받은 문화가 있다면?
처음엔 만화를 그리는 게 꿈이었다. 그 시절만 해도 내 또래 중에는 나처럼 만화가를 꿈꾸는 친구들이 꽤 많았다.
디자인을 공부하기로 결정한 계기가 있는지.
딱히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놀기도 했는데, 어쩌면 주변 사람들과 책이나 그림을 나누어보고 싶었던 생각이 나름의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왕이면 시간을 들여 만든 작업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많이 만들어져 나눠 가질 수 있는 부분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꽤 긴 시간 공부했다.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환경마다 어떤 차이가 있었나?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머물며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 방법 중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체류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학교는 여행을 다니며 만난 디자이너들이 나와 잘 맞을 거 같다며 추천해 줘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학교와 도시의 문화가 밀접하게 연결된 것을 경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반면 미국에서는 학교 캠퍼스와 프로그램, 만난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도시 자체에서 오는 문화적 자극은 높지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이곳 작업실도 인쇄소가 밀집된 곳에 자리해 있다. 이곳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주변 환경에서 얻는 장점이 있다면.
나는 원래 현장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 현장에는 제조업의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특유의 에너지가 있지 않나. 나 역시 그 에너지를 공유하는 현장의 스태프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게다가 임대료도 저렴하고. 실제로 주로 이 주변 인쇄소와 거래를 하는 편이고, 급한 인쇄를 부탁해도 곧 잘 처리할 수 있어서 좋다. 예컨데, 같은 건물 2층의 실사출력소에서는 파일을 보내고 완료됐다는 연락이 오면 바로 수령할 수 있다. 인쇄 감리의 경우도 따로 약속을 잡지않고, 인쇄 들어가기 10분전에 연락이 오면 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신속성이 이 지역에서 일하는 것의 장점이고, 그런 유기성에 많은 재미를 느낀다. 새로운 분들을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눌 수도 있고, 주변에 감리를 보러 오는 동료 디자이너들과 얘기를 나누기도 쉽다. 또, 주변에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사가 많은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큰 장점이다.
여러 공간을 운영하는 것 같은데, 그중 몇 곳은 방문객에게 개방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인상이다. 운영하는 공간을 소개해줄 수 있나?
테스트 삼아 운영하고 있는 공간이 몇 곳 있다. 원래 총 다섯 곳이었는데, 한 곳은 최근 함께 작업하는 분의 사무실로 양도했고, 직접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Bad Room’이라는 이름의 오픈 스튜디오 공간, “No?”라는 이름의 공간, 그리고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작업실, 이렇게 세 곳이다. ‘Bad Room’은 그간 내 작업에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눠온 사람들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편하게 공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마련했다. 공간이라는 게 일하는 방식이나 형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일종의 제약이 되기도 하는 거지. 그냥 즉흥적으로 뭔가 해보자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프레임을 설정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내가 고용하는 것도 아니고 교육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함께 작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테스트해보고 있다.
“No?”는 어떤 공간인가?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 homework press(hwp)에서 발행하는 ‘책’이라고 가정하는 공간의 이름이다. 작업실 바로 아래층에서 나선 프레스를 운영하는 이한범 씨와 우리가 흔히 만드는 전통적인 의미의 책 이외의 책이 가진 가능성에 관해 자주 대화를 나누곤 했다. 책과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만들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기에, 형식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공간을 얻고 나서, 공간 자체를 하나의 책으로 간주해 보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책으로 가정한 공간은 각 페이지에 해당하는 이미지들이 번호를 부여받아 확장되는 형식으로 구상되었다. 연속적인 페이지가 공간 속에 쌓이면서, 실제 공간을 방문해야만 온전한 책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람들이 공간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콘텐츠를 선별하고, 이를 연결하는 책을 소규모 도서관처럼 마련해 두기도 했다. 여기서 나눈 작업 형식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실제 작업에도 많은 영감이 되곤 했다. 앞으로 이 공간은 다른 방식으로 또 재편하여 지속적으로 운영해볼 요량이다.
이번 전시는 그간의 작업 흐름을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전환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평소 작업을 시작할 때도 방향성에 관한 의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확신이 없으면 어떤 일을 해도 마음이 불편하기 마련이니, 확신을 얻기 위한 정리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고민을 해온 시간도 꽤 길게 이어져서 막연한 상태로 작업이 이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고, 그 지점을 갈무리할 숙제가 필요했는데 마침 이번 전시가 그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나 의도에 관해 소개한다면.
전시의 구성은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그중 구름 이미지는 나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상위 다이어그램을 시각화한 것이다. 계량경제학자 한석진 씨와의 대화를 통해서 자연과 인공물을 연속과 이산 — 불연속적인 것 — 으로 구별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이번 작업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구름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걸 벡터로 따서 고정된 이미지로 만든 후 구름이라고 인식하지 않나. 평소 작업에서 경직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서 거창한 기록으로 보이는 것은 지양하려는 편인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전시를 의뢰받은 하나의 개별적 프로젝트로써 분리된 이산적인 것으로 보되, 나의 상태는 구름처럼 연속적인 흐름으로 설정하고 나머지 구성을 준비했다.
구름의 이미지는 호기심과 탐구의 여정을 상징한다. 나는 늘 작은 요소들을 실험하는 데 흥미를 느꼈고, 그 과정을 호기심의 영역으로 간주해 왔다. 하지만 그로 인해 직업인으로서의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도 많았다. ‘이러한 방식이 과연 맞는 걸까? 혹은 미완성된 채로 남겨진 것들만 쌓여가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내면 깊숙이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있었고, 이 고민을 정리할 방법을 찾아야 더 즐겁게 임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찾아낸 비유가 바로 ‘구름’이었다.
구름의 형태는 명확한 듯하면서도 명확하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인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동물 같다고 상상하거나 각기 다른 해석을 내린다. 그런데 불과 1분만 지나도 구름의 형태는 바뀌어 있다. 멀리서 보면 형태가 분명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입자들이 충돌하는 유동적인 상태다. 나는 이런 구름의 속성이 내가 하는 일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작업은 작고, 단발적이며, 움직임이 있다. 당장은 형태가 불분명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명확한 형태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작업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렇다면 전시를 어떻게 이산적으로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지나치게 개념적이거나 미술적인 접근보다는 디자이너로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측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그것에 대한 맥락이나 서사를 상상하는 것이 중요했다. 단순히 직업인으로 의뢰받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이야기를 발생시켜보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하나 고른 게 조슈아 트리(Joshua Tree)에서 가져온 인쇄물이다.
보통 이런 브로셔를 잘 안 가져오는 편인데, 넓고 사람이 없는 공원에서 누군가 다가와 브로셔를 건네면서 ‘여기 가면 해지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라고 말해준 경험이 있다. 천사같이 등장한 그 사람 덕분에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우연히 볼 수 있었고, 조슈아 트리라는 지역을 여전히 미스터리한 장소로 기억하고 있다. 그 에너지를 기억하고자 베란다 한켠에 브로셔를 붙여두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햇빛에 바래버렸다. 빛이 바랜 브로셔는 인쇄물이 가진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 한계를 인쇄물의 미약한 점으로만 볼 게 아니라 새로운 작업의 재료로 삼으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간을 해로 가득 찬 장소로 설정하고, 붉은 기가 돌지 않는 빛이 바랜 잉크의 색을 극대화하여 작품을 구성했다. 이 색상에는 인쇄물에 대한 회의감, 시간의 흐름과 기억, 이야기, 그리고 다음을 기대하는 열망 등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있다. 마치 빛이 바랜 브로셔라는 재료처럼, 매번 어떤 재료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각별히 유의한 부분이 있는지.
전시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의문을 품었던 디자이너라는 역할이 사실은 나와 잘 맞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 역할을 전시로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많이 고민했다. 기존의 작업을 늘어뜨리거나, 너무 개념적인 작업을 하기 보다는 기존 역할을 한번 되짚어 보되, 다뤄보지 않은 새로운 재료나 방식을 시도해봄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부담스럽지 않게 넘어보고 싶었다.
전시에서 사용된 재료와 작업은 글자를 다루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디자이너로서 늘 글자를 다루게 되는데, 글자를 늘어뜨리는 방식에 늘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잘 만들어진 글자 보다는 폰트가 늘어뜨려지는 방식 자체를 이용해서 다른 가능성의 조형이나 방식을 만들어 보는데 더 흥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전시에 배치된 팔레트 아래 놓인 사진을 보면, 무언가 겹겹이 쌓인 정체불명의 형태가 찍혀있다. 사진 속 대상은 내가 시트지를 작업할 때 떼어낸 ‘속 공간들(카운터) — 예를 들면 동그라미, 네모, 또는 ‘ㅁ’이나 ‘ㅇ’ 같은 한글 글자의 내부 부분 —’을 바닥에 버리지 않고 손등에 모아 붙인 것이다. 그렇게 쌓인 버려지는 시트지들이 하나의 조각같다는 생각이 들어 재미있었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에 힌트를 얻어 전시장에 놓인 나무 조각모음을 만든 것이다.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늘 한/영 조판으로 작업을 시작하는데, 나의 시간에 대한 한 문장을 한/영으로 조판했고, 거기서 나온 속공간들을 각각 모아 전시장에 놓은 것이다. 같은 의미의 문장이지만 국문, 영문에 따라 각각의 형태와 볼륨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 외에 나무로 제작된 것 중 하나가 종이를 받치고 있는 팔레트인데, 팔레트의 다리 부분은 마침표의 형태를 입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총 27개의 마침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시기간 이후에 소설가에서 27개의 마침표를 재료로 의뢰하여 27개의 문장을 작업으로 만들 예정이다.
전시장에 한편에 놓인 팔레트에 쌓인 패브릭, 그리고 그 안에 채워진 종이들은 오늘 오후에 사라질 수 있는 유동적인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루는 인쇄나 직업적인 작업과도 연결될 뿐 아니라 재료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팔레트 위의 종이들은 이후에 제작할 책의 페이지로 사용할 종이의 양을 미리 계산해 준비해 둔 것이고, 전시가 끝나면 종이들은 그대로 인쇄소로 보내질 예정이다. 혜인 서(HYEIN SEO)를 운영하는 서혜인 씨와 함께 작업실에서 직접 타이다이 염색을 진행했는데, 패브릭은 이후 다른 쓰임으로 사용되거나,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패브릭에 나염한 그래픽은 구름 이미지에서 출발했고, 구름 덩어리인 것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전시 음악도 중요한 요소다. 공간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모과(Mogwaa) 씨와 함께 작업한 것인데, 내가 주로 거래하는 인쇄소에서 녹음된 소리를 활용하여 화이트 노이즈와 같은 역할을 하는 소리를 만든 것이다. 이 역시 하나의 재료로 가정하고, 전시 이후에 더 발전된 작업을 할 예정이다. 이처럼 전시를 구성하는 품목들이 전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작업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다. 인쇄소로 가는 종이, 패브릭, 음악까지 모든 재료가 자연스럽게 다음 생산물이 된다. 포스트 프로덕션으로 넘어가는 거지. 그렇게 되면 내 역할에 대한 명분이 더 분명해지지 않나. 새로운 연속 작업물로 이어지는 과정과 그에 개입하는 일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다.
전시 서문에서도 암시하고 있듯, 각각의 작업은 ‘변두리에 있는 것을 가운데로 가지고 오는’ 공통적인 흐름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시 전반에 이스터에그처럼 곳곳에 숨겨둔 요소도 눈에 띈다.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인생 네 컷 사진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네 컷 사진을 붙여두고 가거나, 개인 정보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도 민감하지 않게 지나치는 분위기 자체가 이상하고 낯설게 느낀 데서 착안한 작업이다. 사진 안에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 같은 지오메트릭한 요소들이 담겨 있는데 서구적 지오메트릭과는 또 다른, 동시대 가장 한국적인 조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상하게 보이는 단계가 설정되어 있는데, 그걸 판단하기 위해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굽히기도 한다. 이러한 단계가 연속해서 발생하는 과정이 중요한 작업의 일부다.
리플릿에도 세부적인 단계가 설정되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멀리서 바라보면 흔들린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글자들을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서체 자체가 불안정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서도 일종의 속임수 또는 상호작용의 단계를 의도한 건지.
부분적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기도 하고, 사용한 서체가 아직은 미완성의 상태여서 그런 것도 있다. 서체는 Bold Decision에서 개발 중인 것인데, 형태적으로 아직 미완성인 단계가 나의 전시를 위한 것으로 활용되기에 최적이었다. 내가 디자인할 때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단지 완성된 디자인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호작용이나 품질적 완벽함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작품을 소비하는 상황 자체에 주목한다. 그들이 작품을 바라보며 상상하고, 그 상상 속에서 움직임이 발생하는 상태를 의도하는 것이다. 멈춰 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보는 사람의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특정한 설계를 기반으로 무언가를 제시했을 때, ‘이 부분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정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순간에 가치를 둔다. 흥미로웠던 점은 어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뭔가 이상한데?”라며 작품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이나 신체를 의심하면서 “내 눈이 이상한가?”라고 묻곤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반응의 차이가 내가 가장 흥미롭게 바라보는 지점이다.
주변에서 물어보면, 작품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기도 하는지. 보통 작품은 ‘감상자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며, 해석을 열어두는 경향이 있지 않나.
관객에게 작업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려고 하는 편이긴 하지만, 논리적으로 설명을 늘어뜨리지 않고도 어떤 작업의 언어를 느끼도록 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 부분이 훨씬 도달하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디파트먼트의 ‘조의 아파트‘ 작업을 봤을 때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이해하기 힘든 이미지가 산발적으로 배치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프로젝트와 그 재료들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가?
아까 잠깐 언급한 것처럼, 내 작업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해 이미지 디파트먼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조의 아파트는 콘텐츠 생산자로서의 주체성을 실험하는 작업으로, ‘이미지’와 ‘부서’라는 명확한 제약을 설정해 막연한 작업으로 끝나지 않도록 설계했다. 모든 재료는 이미지로 설정했는데, 타이포그래피 역시도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이미지 리서치 작업을 진행했다. 개개인이 찾은 이미지를 개인 작업으로 두지 않고 벽에 모두 붙여 서로 참조하며 공동 작업을 유도했는데, 이는 작업자 간의 편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후엔 각자 수집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재생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미지를 수집하는 방식도 여럿 시도해 보았는데, 그중 한 가지 방식이 온라인으로 이미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곳에 가서 제한을 두고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묘 거리를 가서 각자 만원 씩을 들고 그 안에서 이미지를 찾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무수한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 물리적인 장소에서는 인터넷에 없는 독특한 이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적절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 노동력과 탐색 기술이 필요했고, 예산을 초과할 경우 충전도 요구되는 등 복합적인 경험이 동반됐다. 이렇게 수집된 이미지는 디지털화되어 서로 공유하고 기록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실험을 했다.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주어진 자료를 해석하는 데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에 어색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도 누군가 말한 것을 옮겨 적거나 역사적 자료를 리서치하는 데 집중하기 일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게 되면 일러스트레이터처럼 단순한 시각적 재현에 그치거나, 개념적이라는 틀에 갇혀 흥미롭지도 않고 개념적 깊이도 부족한 결과물을 만들게 된다. GPT와 같은 AI 기술 덕분에 이야기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던 디자이너에게 굉장히 유리한 환경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작업은 AI를 활용했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우리가 이야기의 생산 주체가 되어 AI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조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AI를 통해 수많은 이미지를 생성했지만, 그중 단 하나의 이미지를 선택해 중심에 두고, 거기서부터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발화시키며 무한히 확장해 나가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여기서 탄생한 캐릭터가 바로 ‘조’다. 우리가 만든 이미지에는 디지털 경험뿐만 아니라 피지컬한 경험이 녹아있기에 이것을 보여주는 방법 역시 AI의 물리성을 느낄 수 있는 방향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 휴대폰 라이트를 켜서 조의 요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경험하는 방식을 취했고, 건물의 낡은 흔적, 구조적 특징 등 공간에 녹아 있는 시간성과 물리성을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미지 디파트먼트의 작업 과정이 마치 하나의 학교처럼 운영되었다고 보이기도 한다. 평소 디자인 교육에도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기초적인 교육은 필요하지만, 결국 실무가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문제지. 교육 자체에 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교육자로서의 사명이나 계몽 의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보니 교육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오히려 부족한 점을 많이 느끼니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뛰어드는 대신, 내 개인의 영역에서 해소해 보려는 이런저런 시도를 해본다. 그러다 보니 이런 시도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 같다. 사람들한테 ‘우리는 새로운 것을 교육합니다’라고 알리려는 게 아니라 그냥 이게 맞을까 서로 의심하면서 한번 해보는 거지. 그래서 수업이 아니라 회사라는 제약을 설정한 거다. 한국에서는 수업이 되면 내가 뭔가를 제공해야 되고 이상한 위계가 생긴다. 우선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존칭 자체가 내게는 잘 맞지 않는 것도 같고. 옆에 있는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하고 학습하고, 실험하는 과정이 더 교육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최근에 배운 것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글쎄, 한 가지 꼭 집어 말하기 어렵다. 매일 새로운 대화를 통해 배움을 얻는다. 학교에서 오래 공부했지만 선생님들에게 배운 것보다도 직접 흥미롭고 궁금한 사람들을 찾아다녀서 배운 것들이 많다. 모든 관계라는 것이 상호교환의 전제하에 성립되기에 그들에게도 내가 궁금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사람마다 가진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 그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배우는 과정은 늘 흥미롭다. 때때로는 내가 10년이나 20년을 들여 직접 경험해야 할 내용을 간단한 대화로 전달받는다. 책을 읽는 것과도 비슷하다.
인터뷰를 진행하다보니 전시나 공간, 시간 등 물리적인 접점을 새로운 작업이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바라보는 것 같다.
결국에는 온라인이 채우지 못하는 부분은 분명히 물리적인 공간에 있다고 느껴서 공간을 계속 들여다보는 편이다. 그렇다고 온라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온라인이 현대 미디어 환경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다만 그 온라인의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결국 물리적 공간이 필수적이다. VR을 사용하거나 오디오를 청취하는 것조차 공간이 필요하다. 인간은 신체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신체의 반경 내에서 경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신체적 반경이 오프라인과 접목될 때 그 경험의 가치는 극대화된다. 극단적인 예시로는 온라인으로 큰 수익을 얻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에 비싼 빈티지 오디오 장비를 들여놓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결국에는 전기와 공간이 필요하다. 물질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심심할 땐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디자인 외에 즐기는 취미가 있는지.
사실 심심할 틈이 없다. 따로 취미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디자인을 좋아하는 이유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로 엮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최근에는 루틴으로 오전에 수영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전개할 때 스케치나 메모 등 주로 어떤 방식을 활용하는지 궁금하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내 작업에는 스케치 단계가 많지 않은 편이다. 주로 머릿속에서 바로바로 정리하고, 직접 시도하면서 수정하는 방식이다. 미리 설계를 해놓고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 변화를 주며 발전시켜 나간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진행한 전시도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나? 싱가포르에서 문화적으로 새롭게 느낀 부분이 있었는지.
그렇진 않다. 싱가포르에는 일적인 이유로 갔는데, 마침 그곳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디자이너의 제안으로 책이나 포스터 등 그간의 작업물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싱가폴은 매우 깨끗하고 잘 통제되어 좋기는 했지만, 문화적으로 큰 흥미가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름의 자기 실험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이처럼 각자의 상황과 환경에 맞춰 자신의 역할을 해 나가는 것들을 보며 많은 걸 느꼈다.
전시 준비 과정을 통해 개인적으로 고민했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것 같다. 현재 새롭게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
전시를 통해 마음의 정리를 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작은 시도들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이를 위해 더 기동력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미국으로 가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LA에서 약 5주 정도 머물 예정인데, 물론 미국에 일이 있긴 하지만 사실 컴퓨터만 있으면 여기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굳이 LA로 가는 이유는, 그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멋진 일을 해내야겠다’는 부담감보다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내가 찾아서 한번 시도해 보고자 마음으로 가는 것인데, 이런 마음가짐은 20대 초반과 비슷한 상태이기도 하다. 물론 나이도 들고 여러 가지 배경이 달라졌지만, 지금은 성취에 대한 욕심이나 현재 위치에 대한 부담을 최대한 내려놓고, 순수하게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다. 이번 전시 역시 ‘이걸 하면 대단한 위치에 오를 수 있다’라는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계산했다면 아마도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으로 활동했을 것이다.
장기적인 목표가 있다면.
특정한 성취를 향한 목표를 두지는 않는다. 대신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다. 방향이 어느 정도 정해지면 그다음부터는 계속해서 마주치는 우연의 흐름을 즐기는 편이다. 과정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굳이 정해진 성취점을 목표로 삼지 않는 것 같다.